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김헌수 목사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구약학)

 

2013년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작성된 지 45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인쇄된 정확한 날짜는 다소 모호하지만, 요리문답 서문은 1563년 1월 19일 화요일에 하이델베르크의 영주이자 선제후인 프리드리히 3세의 이름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성약출판소식」 2013년의 첫 호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는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 됩니다.

 

어제 - 프리드리히 3세의 “서문”을 중심으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서문을 읽으면 네 가지 사실이 현저하게 들어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선제후의 권위를 “무엇보다도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도록 이끌고 주님의 구원의 말씀을 모든 도덕과 순종의 유일한 기초로 깨닫게 하는 데에 끊임없이 사용할 의무”를 느낀다고 밝히고, “그들이 영원한 복과 현세적인 복에 들어가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전심으로 힘쓰며, 짐(朕)의 힘이 미치는 한에는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려 하노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프리드리히 3세가 자기의 힘이 미치는 한에는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지위와 통치권을 사용하겠다고 한 것은 그저 입에 발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로마 교회의 영향에서 자랐고, 신성로마제국의 황태자의 친구로서 그와 함께 로마 교회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개신교도 아내와 혼인하면서 개신교로 개종하였고 그 이유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냈습니다. 카를 5세가 종교개혁을 반대하는 서명을 하라고 하였을 때에(1541년. 레겐스부르크 임시 협정) 그는 조금도 굽히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 문서에 서명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어떤 어려움이라도 당하겠습니다. 본인의 믿음 때문에 이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 수 없다면 다른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신앙상의 이유로 힘든 시기를 지냈지만 그는 황제 선출권이 있는 일곱 선제후(選帝侯)의 하나가 되었을 때에 그 지위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통치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참된 경건에 이르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였고, 그 일을 위하여서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 어린아이와 젊은이를 바른 교훈으로 교육하는 것이 요리문답 작성의 목적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자기가 다스리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선생들이 알아서 자기 마음대로 가르치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악이 나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없다고 개탄하였습니다. 그는 “거룩한 복음의 순수하고 통일된 교리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으로 교육을 받는 것”이 가장 요긴한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목적을 위하여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작성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요리문답을 반포하면서 “설교자와 교사 자신들도 젊은이들을 가르칠 때 확실하고 신실한 문답서와 수단을 사용할 것이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매일 새롭게 시도하거나 그릇된 교훈을 도입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분명한 지침을 밝혔습니다.

 셋째, 프리드리히 3세는 학교와 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요리문답을 가르칠 뿐 아니라 교회 강단에서도 요리문답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 이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학교와 교회에서는 젊은이들에게, 강단(講壇)에서는 평민들에게 그 문답의 참된 뜻을 부지런하고 신실하게 제시하고 설명하며, 이것을 따라서 가르치고 행하고 살기를 원하노라.

 끝으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팔츠 교회의 신앙고백서입니다. 이 요리문답이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의 주도로 작성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루터, 멜란흐톤, 칼빈, 베자 등과 관계가 있는 분들이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그 당시의 유명한 신학자들을 언급할 수도 있었지만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이곳의 신학부 교수회와 모든 시찰 감독들 그리고 고명(高明)한 목사님들의 충고와 도움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교훈의 요약 혹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요리문답을 독일어와 라틴어로 작성하여 출판에 부치노라.

 종교개혁 당시에 작성된 요리문답서들을 보면 작성한 개인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렇지 않고 위원회의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원회에 속한 사람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서문을 쓴 프리드리히 3세가 80문에서 “저주 받을 우상 숭배”라는 구절을 넣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다른 위원들의 활동에 대하여서는 더 이상 모릅니다. 서문에서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이것이 위원회의 작품이고, 팔츠 교회의 신앙고백이라는 점입니다. 하이델베르크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요리문답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끌어낸 교훈의 요약’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팔츠의 신앙고백이 보편성을 지님을 봅니다.

 

 오늘 - 요리문답 교육과 설교를 중심으로

 요리문답은 팔츠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널리 전파되었고, 지금까지 450년 동안 세계의 여러 곳에서 매 주일 교회에서 가르쳐지고 또한 설교되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젊은이를 위한 교리 교육의 교재로 사용되고 동시에 주일 오후 혹은 저녁 예배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요약한 내용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교리 교육과 교리 설교는 매우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경의 핵심적인 교훈을 잘 요약하여서 젊은이들에게 교리의 기초를 가르쳐 주고, 또한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신앙의 기초를 알려 주는 데에 매우 요긴합니다. 사실 요리문답을 통하여 ‘믿음의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목사의 강설을 들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틀이 있어야 무엇을 쌓을 수 있는 것처럼 요리문답에서 제시하는 기독교의 골격을 배워야 교회에서 전하는 말씀을 풍부하게 담아 실천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요리문답은 성경의 핵심 교훈을 ‘복창’(復唱)하는 것인데 교회의 어른들에게도 필요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반포되자마자 교회에서 강설되었고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약 55년 후에 열린 도르트 회의(1618/19년)에서도 오전에는 주해 설교를 하고 오후에는 요리문답 설교를 하도록 교회법으로 정하였습니다.

 목사는 어느 곳에서든지 통상적으로는 오후 예배에서 매 주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요약되어 있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설교할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나눈 요리문답의 구분을 따라서 일 년에 한 번씩 마치도록 설교할 것이다. (도르트 교회법, 68조)

 사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근간을 이루는 사도신경과 십계명 그리고 주기도문을 강설하는 것은 고대 교회에서부터 볼 수 있는 전통이었습니다. 고대 교회에서부터 신앙의 기본적인 것을 매 주일 가르치고 설교한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요리문답에 요약된 대로 가르치는 일이 없이 성경 주해만 한다면 목사의 개인적인 성향에 치우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각 권을 잡아서 주해 설교를 하는 것이 좋은데 각 권을 주해하다 보면 기독교의 기본적인 도리, 곧 죄와 회개,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과 재림 등에 대하여서는 오랫동안 설교하지 않고 지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간이 오래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편식하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마르틴 루터의 태도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됩니다. 그는 자기가 쓴 소요리문답의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나에 대해서 말하면, 나도 박사이고 설교자입니다. 나도 (요리문답을 다 안다고, 필자의 첨언) 자부심과 확신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배웠고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요리문답을 배우는 아이처럼 행하여 아침마다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습니다.……나는 매일 요리문답을 읽고 공부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아직 시원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요리문답의 아이와 학생으로 남아 있어야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합니다.

 루터 목사님이 그렇게 많은 열매를 맺는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요리문답의 학생’으로 남아서 매일 요리문답의 내용을 묵상하고 그것을 교회에서 가르치고 설교하였기 때문입니다.

요리문답 설교에 대하여 반대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요리문답은 사람이 만든 문서이기 때문에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칙과 어긋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리문답을 설교하는 목사들 가운데 아무도 요리문답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을 주장하면서 로마 교회를 개혁한 마르틴 루터가 대소요리문답을 작성하였다는 사실이 그 사실에 대한 좋은 반증이 됩니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요리문답이 지닌 ‘교회적 신앙고백’의 성격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리문답은 교회적인 해명으로 거기에 요약된 원칙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요리문답을 무시하고 성경만 가르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잘 보면 ‘나름의 요리문답’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의 요리문답’을 따라서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450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의 요리문답이 ‘나름의 요리문답’보다 더 풍성하고 따라서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둘째, 요리문답은 추상적이고 반복적이어서 지루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1문을 놓고서도 추상적이고 지루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요리문답을 잘못 가르치면 딱딱하고 지루하게 가르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성도를 사랑하는 목사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모차르트가 “아, 어머님께 말씀드릴께요”(“반짝반짝 작은 별”로 알려진 곡)라는 곡조를 듣고서 12개의 변주곡을 작곡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소명을 받은 목사는 자기에게 맡겨주신 교회의 형편을 따라서 매 주일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전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12개의 변주곡을 쓴 것보다도 더 다양하게 같은 주제를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풍요로움과 새로움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일 - 1문의 ‘위로’를 중심으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2004년에 성약출판사에서 출간하였고 지난 8년 사이에 약 3만권 정도가 팔렸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지고 이 주제의 설교집과 해설집들이 여러 권 출판되었습니다. 외국 저자가 쓴 것을 번역한 것뿐 아니라 국내 저자가 집필한 것도 여러 권 있습니다.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요리문답 자체의 미래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위로이고, 죽음 너머에 있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위로’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오는데(1, 44, 52, 53, 57, 58문) 공통적인 것은 주님의 심판대에서 하나님의 편에 속하였다고 인정을 받는 것과 관련된 맥락에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음부에 내려가심’(44문), ‘심판하러 오실 것’(52문), ‘육신의 부활’(57문), ‘영원한 생명’(58문) 등이 어떠한 위로를 주는가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요리문답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위로는 감정적인 위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뿐 아니라 죽음을 넘어 영원한 나라에서 맛보는 그러한 위로입니다. 이것이 요리문답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미래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소식을 요리문답반에서 배우고 또한 매 주일 교회의 강단에서 듣는다면, 그 교회는 참으로 미래가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출처: 「성약출판소식」, 88호 (2013년 4월)